오지리에 두고온 서른살
이제 막 5킬로가 넘는 질척거리는 밤길을 짐보따리와 아이 하나 데리고 걸어갈 채비를 하던 여자는 뜻밖에 채옥이였다.
채옥도 은이의 얼굴을 알아보았는지 천천히 은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채옥의 얼굴은 그렇잖아도 얇은 눈두덩이가 거무스름하게 푹 꺼지고 볼우물이 파인 게 몹시 상해 보였다.
'지금 내려오는 길이니?'
채옥이 먼저 건조한 억양으로 물어 왔다. 은이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 채옥에게 물었다.
'너는?'
'나 여기 내려와 산 지 반 년 넘었어.'
'같이 내려왔니?'
'아니, 떠나 왔어.'
채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떠나 왔어라고 빠르게 말했다. 그럴 이유도 없건만 채옥의 떠나 왔단 말에 은이 가슴 한켠이 서늘해져 왔다. 떠나옴. 막연하지만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 나오는 말이다.
'통 내려오지도 않고 소식도 없던 모양이더니 어쩐 일로 내려왔니?'
은이는 또 얼른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입을 다문 채 희미하게 웃어 보이고는 가방을 주워 들었다.
'가자.'
은이가 마치 채옥이 네가 올 줄 알고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길이 어두웠다. 신작로는 벌건 흙탕길이었고 진눈깨비는 어느새 굵은 눈발로 변해서 바람을 타고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또 우리가 여기서 만나게 되는 거니. 은이는 채옥 몰래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시는 만나게 되지 않기를 바랬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