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저자
김다은
출판사
eBook21.com
출판일
2003-10-01
등록일
2003-10-01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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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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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경민은 TV를 눌러 껐다. '사랑의 이중주'는 서서히 구조 조정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잘 나가던 안방 프로듀서와 드라마 작가와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만만했었고, 드라마가 이런 중병에 걸릴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었다. 모든 중병이 그렇듯이 병을 미리 알아챌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12% 비상 사태. 드라마를 진찰해보니 쓸모없는 종기가 몸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단 병에 걸린 것을 확인한 이상 암 덩어리는 제거돼야만 한다. 그 수술은 이미 시작되었다. 시나리오는 고쳐졌다. 그것을 시술하는 프로듀서도 이미 마음을 정한 것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연계된 이 병든 드라마의 구조 조정, 그 첫 번째 희생자가 강은지였다. 주변 사람들도 충실하게 이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도하며 협조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이다.

'모두 한꺼번에 침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과장은 경민에게 정리 해고자를 통보하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경민도 강은지처럼 처음에는 간단하고도 무력한 저항을 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역시 암같은 존재였다. 서둘러 잘라내지 않으면 곳곳으로 전이되어 회사를 쓰러뜨릴 것이라고 했다.
경민은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방안에는 꺼진 TV가 거대한 덩어리처럼 웅크리고 있고, 낡은 가구, 사진, 자명종, 행거, 아내의 숄, 오래된 신문지 따위가 가득 차 있고, 방바닥에는 개미가 기어다니고 가끔씩 날벌레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이것들을 정돈해 놓기 위해 그는 공간이 필요했고, 그는 그렇게 힘들게 일했었다. 하지만...바닷가에 밀려온 물결 위의 거품처럼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덧없고 허망한 공간! 모든 일이 그렇게 은밀하게 진행될 수가 없었다. 주인은 은행에 이 건물을 담보로 맡기고 융자를 얻어 사업을 했고 아이엠에프 체제 초기에 망해 버렸다. 건물의 소유권은 먼저 담보를 쥐고 있던 은행으로 넘어갔고, 은행은 이 건물을 경매에 내놓겠다고 했다. 경민이 쥐고 있는 전세 등기는 순위상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아내가 민지를 데리고 나가버린 것은 집안의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바로 그 자신들조차도 정돈해 둘 장소가 곧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내는 삶에 있어 그보다 더 본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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