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봄을 만나다
남편은 처음에 그녀의 그런 무력한 모습을 당연히 여겼다. 아기가 죽었는데……그것도 뱃속에서 다 길러놓고, 점점 생에서 멀어져가려 하는 그녀를 잡고 위로도 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까지 내가 한 일은 내 자궁에 들어선 아이들을 하나같이 죽이고, 당신의 와이셔츠만 다리며 살았는데……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듯이 이렇게 조용히 살다가 죽을 거예요. 나는 조용히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빨리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나이를 합한 그것이 '봄'의 나이일 거라구......
질투, 갈망……처음 남편의 뒤에 '봄'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질투의 감정이 솟구쳤는가? 알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질문에 모르겠다, 라고만 할 뿐이다. 그녀 안에 고개를 숙인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인가? 그것 역시 그녀는 모른다고 고개를 흔든다. 자기 안에서 울려오는 질문에 답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순수한 정열의 빨강색. 그녀는 입술은 '봄'의 그것과 똑같다. 아가씨가 바른 것과 똑같은 색상을 사고 싶어요. 그녀가 처음 '봄'에게 한 말이다.'봄'은 립스틱의 뚜껑을 열어 스틱의 아래를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린다. 강렬하고 붉은색이 조금씩 그녀의 눈앞에서 올라온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는 날까지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그 작은 수첩에서 알 수 있다. 어머니를 사랑할 수도, 사랑사지 않을 수도 없는 아버지의 죄의식이 죽음으로써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썩지 않다니, 왜! 왜, 안 썩어! 썩어야지. 썩고, 또 썩어야지. 아버지, 이제는 썩어서 흙이 되고 물이 되어 편안해지세요. 그리고 여자, 당신도 아버지와 함께 흙과 물이 되어 서로를 휘감고 새로운 생명을 받아야지요.
그래서 내 아이가 힘껏 뛰노는 땅이 되고 하늘이 되어야지요. 이제 다 끝났어요. 보셨죠. 오늘 어머니가 그 뜨거운 해를 피할 생각 없이 엎드려 잡초를 뽑는 것을……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했겠어요? 그러니 이젠 편안히 눈을 감고 썩으세요. 그녀는 수첩에 라이터불을 갖다댔다. 어두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불티들을 보며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