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감정의 우월을 중요시하면서 자유와 개성을 구가하는 낭만주의 작가 나도향의 작품 '어머니'.1920년 대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그 경지를 넘어 사실주의적 경향까지 드러낸 그만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도록 하자.
『영숙!……영숙!』
없는 이의 이름을 두어번 불러 보더니, 다시 아무 생각없이 있었다. 『영숙』이라는 음조가 피아노의 바음을 두 번 울린 것 같이, 온 몸과 영(靈) 속에서 미묘한 선율(旋律)을 일으키더니, 연기 위에 비친 그림처럼 사라졌다.
머릿속은 혼탁하여 졌다. 영숙의 그림자는 안개속으로 보이는 동상처럼 희미한 윤곽만 보이더니, 동에서 모여 들었다 서로 사라지고 천리 밖에서 달려 왔다. 만리 저쪽으로 달려가는 천가지 만가지의 뜻하지 않든 연상(聯想)이 번개와 같이 꼬리를 잇고 인화(燐火)와 같이 사라지는 것이 밀리고 휩싸이어 간 곳 모르게 없어지었다.
춘우는 다시 영숙의 환영을 찾아 내려고 안공(眼孔)에 펼쳐있는 무한한 황야를 방황하듯 한 생각으로써 헤매였으나 다시는 찾아낼 수가 없고 구름을 손가락으로 잡으려는 것처럼 잡힐 듯 하고도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본문 중에서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호는 도향(稻香)이다. 1917년 배재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같은 해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에 뜻을 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학비 미조달로 귀국, 1920년 경북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22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젊은이의 시절」「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을 발표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하였다. 1926년 다시 일본으로 갔다가 귀국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타계했다.
대표작품으로는 「물레방아」「뽕」「벙어리 삼룡이」등과 장편 「환희」가 있다. 나도향의 작품들에는 본능과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객관적 사실 묘사로 그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