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스또이의 사랑이야기
똘스또이 자신은 노동·채식·금주·금연하는 간소한 생활을 하고, 자신의 땅을 농부들에게 나눠주는 실천으로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책에서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똘스또이의 글과, 자신의 화폭에 세상을 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면서 그 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천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주어야 그릴 수 있을 것 아닌가.'라고 말하며, 좀더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던 쿠르베, 미술의 과학성을 위해 자연의 색채를 원색으로 환원하여 무수한 점으로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통일성을 유지했던 쇠라, 삶과 죽음,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를 강렬한 색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뭉크, 그 밖에 밀레, 루소, 파울라, 야블렌스키, 클레 등 이 책에 실린 명화 25점을 그린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에서 어떤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Lev Nikolayevich, Graf Tolstoy) -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톨스토이는 남러시아 툴라 근처에 있는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명문 백작가의 4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을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대학교육에 실망을 느껴 카잔대학을 중퇴하고 영지로 돌아가 농민생활 개선에 힘썼으나 실패하고 잠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1851년 3월 <어제 이야기>를 썼으나 미완성으로 남겼다.
이 해에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했으며 이듬해「소브레멘니크(현대인)」에 <유년시절>을 발표하면서 전역하기까지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1862년 34세 때 궁정 의사의 딸인 18세의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 교육잡지를 발간하기도 하면서 문학에 전념하여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였으며 이어 <안나 카레리나>, <부활> 등의 역작을 남겼다.
그러나 <안나 카레리나>를 완성할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함으로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은 톨스토이는 1880년에 들어 위선에 찬 러시아 귀족사회와 러시아 정교에 회의를 갖고 마침내 초기 기독교 사상에 몰두, '톨스토이주의'라고 불리는 사상을 체계화함으로써 예술가 톨스토이에서 도덕가 톨스토이로 변모한다.
이 정신적 위기와 극복이 이른바 톨스토이의 '회심'(回心)이며, <참회록> 속에 서술된 고백의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톨스토이는 현대의 타락한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원시 그리스도에 복귀하여 근로·채식·금주·금연의 생활을 영위하였다.
지주생활 청산을 선언, 모스크바 빈민굴 인구센서스에 참여하고 대기근에 시달리는 농부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도 조직한 이 위대한 작가는 1910년 10월 28일 가족들 몰래 가출하여 11월 7일 라잔 우랄 철도의 작은 간이역 아스타포브(현 톨스토이역) 역장 관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 - 두 노인의 순례
두 번째 이야기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 번째 이야기 - 일리야스의 행복
네 번째 이야기 - 불은 커지기 전에 꺼야 한다
다섯 번째 이야기 - 세 사람의 은자
여섯 번째 이야기 - 촛불
일곱 번째 이야기 -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