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희망없이
증오하는듯 하면서도 끈끈하게 묶여있는 마담 언니와 박선생님, 마담언니와 친구사이가 된 박선생님의 옛 약혼녀, 새살림을 차린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꼬박고박 월급을 가져다 바치는 주방 아줌마, 현수를 무시하지만 은근히 싫지 않은 윤희등, 생생한 인물들을 통해 모순된 듯 하면서도 사실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을 능수능란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한숨이 나온다. 박선생님 머릿속에는 언니밖에 없다. 그는 내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바보 같은 박선생님. 하기야 나는 내 마음도 잘 모른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나는 변덕이 너무 심하다. 보통 때에는 사람들에게 멀쩡히 잘 대해 주다가도, 어느 한순간에는 이유도 없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눈 한번 곱게 떠지지 않는다. 그래도 삼층 신문보급소의 현수는 싱글벙글이다. 톡톡 뱉는 내 말버릇이 매력이라나? 어울리지도 않게 능글거리기는. 아무리 젠 체 해도 현수는 불합격이다. 토끼띠, 스무 살. 풋내가 풀풀 난다. 남자라면 박선생님 정도는 되어야 믿음직하다. 올해로 서른 둘, 토끼라도 늙은 토끼다. 나하고는 열 네 살 차이.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어떤 여류화가는 자기보다 마흔 살이나 많은 남자하고 결혼해서도 잘만 산다고 한다.
아, 사랑이란 정말 무엇일까. 내 가슴속을 박선생님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가 이해하려고만 한다면 내 속마음이야 알고도 남을 것이다. 가슴 깊이 저려오는 이 서러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정말 시인도 뭣도 아니다. 나는 우산을 더욱 밑으로 끌어내려 그러잡는다. 이런 때는 눈물을 흘리면 제격인데‥‥‥ 눈물은 나지 않는다. 언니 같으면 거짓 눈물도 멀쩡히 흘릴 사람이다. 그러나 언니는 박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니 말대로, 박선생님은 언니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눈이 찌그러진 주방 아줌마가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줌마는 자기 남자를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