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겨울, 램프 속의 여자
꼭 오늘처럼 눈 내리는 저녁이면 생각나는 여자가 있다. 눈이 올 때마다, 혹은 눈이 오는 저녁마다 생각나는 것은 아니다.
막연히 슬퍼보이긴 했지만 그때는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그게 어떤 아픔이며 어떤 끔찍함인지 몰랐다.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여자의 이름뿐이다.
은집이라고 했다. 노은집.
나는 금방 내가 붙인 남포의 불빛을 향해 빙그레 웃는다. 남포의 불을 밝힐 때마다 왠지 내 마음 속의 불을 밝히듯 어떤 넉넉함이 마음속에 깃든다. 나는 거울도 없이 내 마음의 눈을 바라보듯 남포 심지의 불을 바라본다. 집안에 불을 밝히는 일. 그것은 마치 성전에 불을 밝히는 일과 같다. 아니, 일이 아니라 그보다 성스럽고 엄숙한 의식이다.
나는 여자에게 남포를 든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손이 남포 걸이를 잡는 걸 확인하느라 다시 그 아래 여전히 아랫도리를 벗은 채로 앉아 있는 여자의 몸을 보았다. 여자는 무릎을 구부려 허벅지를 가슴 쪽으로 붙여 앉은 채 남포를 받아 신발처럼 자기 몸 옆에 놓았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래?'
'예.'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데도 내 목은 여전히 잠긴 채로였다.
'목이 말라. 물 좀 떠 줄래?'
그러다 허벅지 사이에서 손을 뺐을 때, 나는 여자의 손에 들려 있는 그 눈뭉치 한 켠에 마치 물감을 찍어내듯 선명하게 찍혀 나온 붉은 핏자국을 보았다. 어둠 속에 그 일이 있은 것이었다. 읍, 읍, 하며 여자는 몸 속의 피를 흘린 것이었다. 내겐 오직 그렇게 여자가 다른 곳도 아닌 그곳으로 몸 속의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만 중요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눈을 헤치며 언덕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기도 했다. 여자는 그렇게 눈 내린 새벽, 자고 난 아침 일찍 그 길을 내려가야 할 가마보다 먼저 눈길을 헤치고 떠났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으로 오래도록 마루에 남포를 켜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