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소설속의 그려진 인물들은 현실속의 인물들이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모두 실제가 아닌 허깨비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는 것이므로... 삶은 환상과 실재가 뒤얽혀 전도된 것이므로... 작가는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한 세계가 죽고 또 한 세계에 태어나지 못한 나는 누구인가? 폐허속에, 부조리극속에, 공허와 침묵속에,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하고......
카운터 건너편에 앉은 바텐더에게 500cc 한 잔을 더 시킨다. 새 잔을 잡으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마지막 장면들을 떠올린다. 흰 자위가 가득찬 니콜슨의 미친 눈. 차마 볼 수가 없어 그를 죽여주던 인디언의 표정 - - - 환상와 실재가 뒤얽혀 돌아가는 인생속에서 인생은 모든 환상을 삼켜버리고 모든 것을 실재로 치환해 버린다.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 정임은 실재가 아닌 허깨비인가. 그렇다. 그런데 소위 현실의 인물인 은우도 윤희도, 성규도, 박문도도, 어쩌면 작가인 이인화도 모두 실재가 아닌 허깨비가 아닐까. 시간으로서의 존재는 실재가 아니며 다만 흐름이 있을 뿐이다. 서로 다른 사진의 나열처럼 삶은 실재가 아니라 무수한 욕망의 모델들이 만들어낸 그 무엇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란 욕망의 흐름이 만든 환상의 복합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