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나는 그의 몸을 안아주듯 두 팔로 꼭 붙잡았다. 천장에 박힌 소등용 전구가 우리 둘의 머리를 말없이 비춰줄 뿐 고요히 시간이 흘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그의 머리를 제자리에 반듯이 놓아주며 헛구역질 같은 마른 것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헛헛한 기분으로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데에 따른 움직임 이외에는 아무런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내 뱃속에는 생명이 자라지 않았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틸 겁니다.'
주위의 걱정을 뒤로 한 채 나는 뱃속의 생명이 소진 씨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고 있음을 고집스레 믿어왔다.
'태아가 움직이지 않은 것은 벌써 삼사 일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상태로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의식을 되찾고 보니 내 팔에는 링거액이 매달려 있었다. 소진 씨가 이쪽 병원으로 옮겨오는 날 아참 종수 씨가 들르기 전까지도 나는 내 뱃속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꽃무늬 벽지가 눈에 들어오면서 눈물 젖은 언니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당장 소진 씨한테 달려가고 싶었다. 그가 사무치게 보고 싶고, 만지고 싶었다. 있는 힘을 다해 배를 움켜잡았다. 아무리 움켜잡아도 생명이 꺼져버린 배는 허전할 뿐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우는 거야?'
아이를 잃고 그에게 오니 놀랍게도 그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는 우는 일이 없었다. 그의 형이 세상을 뜨셨을 때도 그는 짝 잃은 외기러기처럼 홀로 상주의 자리를 지킬 뿐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웬 눈물인가. 기이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사이에 눈이 두 배로 커져 있었다. 살이 거의 다 빠져나간 까닭이었다.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눈물이 그의 눈에서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거짓말 같았다.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우는 게 아니야.'
그의 큰누이가 나를 달래주느라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소진 씨, 우는 거 아니지? 그냥 눈물이 흐르는 거지? 그냥 눈물일 뿐이지?'
나는 커다란 새처럼 가녀리게 헐떡이고 있는 그를 붙잡고 확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 거듭 물었다. 그는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을 말해주듯 크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1964년 생.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로 등단.
소설집으로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1992), [밤은 말한다](1995), [동행](1998), [당신의 물고기](2000)가 있고,
장편소설 [행복](1998), 중편소설 [아주 사소한 중독](200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