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수레바퀴 - 헤르만 헤세의 종교와 신화
이집트의 종교와 신화, 기독교, 불교, 인도의 종교와 요가, 고대 중국의 사상, 선(禪) 등에 나타난 다양한 현상과 본질을 소개하며 이에 대한 논평과 단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헤르만 헤세의 산문집이다. 저자의 작품에는 대립적인 현상들의 통합을 통해 진정한 자아에 도달하려는 작가정신이 배어 있는데 이 책 역시 세계 전체가 신(神)적인 통일성을 의미하여 우리 개개인은 전체의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들이라는 상상에 기초하고 있다.
헤세는 고대 중국이나 인도의 사상이 현대인의 삶에 여전히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파악하며 동양 사상에서 현대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동과 서의 서로 대극점에 있는 상이한 문화적 이상들의 상호보완을 통해 통일적인 전체성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 믿음 하에 우리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점검하길 바란다. 종교와 신화 등 이러한 인류의 유산들은 헤세의 종교관 및 세계관의 다양한 현상과 본질을 소개하고 헤세 자신에 결합시키면서 거기에서 드러나는 대립적 현상들의 통합을 통해 진정한 자아에 도달하려는 헤세의 정신이 잘 드러난 산문집이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남부 독일 슈바벤의 소도시 칼브에서 출생했다. 스위스의 바젤에 거주하며 아버지가 스위스 국적을 얻었다. 그후 고향 칼브로 돌아와 괴팅겐에서 라틴어 학교에 다녔으며,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7개월 후에 중도에 그만 두었다. 1892년 칸슈타트 김나지움에 다니며 중등 학교 자격 시험을 치룬 후 학업을 중단했다. 칼브에 있는 페로 탑 시계 공장 실습공이 되어 그때부터 시와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튀빙겐의 헤켄하우어 서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헤세는 1899년 첫 시집 「낭만의 노래」와 산문집 「한밤중 후의 한 시간」을 발표하였다. 1904년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했고, 마리아 베르눌리와 결혼하여 보덴 호수 근방의 가이엔호펜으로 이주했다. 1906년 장편 「수레바퀴 밑에서」를 간행했고 이때 수필을 많이 썼다. 헤르만 헤세는 1913년까지 잡지 '3월'의 편집진이 되어 이 잡지에 자신의 글을 발표하였다.
헤르만 헤세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헤세의 40대의 작품인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하였는데 전후의 젊은 세대에 충격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작품으로 폰타네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지만 그 상이 신인들을 위한 것이므로 자기 이름을 밝히고 되돌려 준 다음 이듬해 9판부터 본명으로 간행했다.
1931~1943년에 걸쳐 발표한 작품으로는 「싯달타」「어린이의 영혼」「클라인과 바그너」「클링소르의 마지막 영혼」「내면으로의 길」「괴테에의 감사」, 전원시집 「정원에서의 시간」으로 고트프리트 켈리상 수상, 그의 마지막 작품인 「유리알 유희」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헤세는 1946년 프랑크푸르트의 괴테상 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의 75회 탄생일을 기념하여 6권으로 된 「헤세전집」을 간행했다. 그는 독일 서적상의 평화상을 받았고, 헤르만 헤세 상을 창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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