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80년대에 운동했던 이들의 90년대를 그린 장편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현실을 그린 작품집 「빈집」의 작가 오수연의 연작 장편 소설. 제3의 나라에서 묘한 인연으로 엮인 타국적의 두 여자와 두 남자, '부엌'이라는 생존의 바닥에 모인 외로운 존재들의 뒤늦은 성인식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오수연 작가의 삶과 인간에 대한 끈질긴 고민의 소산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두고 성장소설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한 여자 혹은 두 여자가 타인과의 관계맺음에서 비롯되는 모든 상처와 실패와 수용의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부엌'은 성인식을 치르는 제사장으로 상징된다. 세 남녀의 관계는 음식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데, 극단의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는 꼭 그만한 극단의 가치관으로써 한 여자를 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그녀는 이곳에서 성인이 되는 열병을 앓는다.
부엌이란 인간 생존의 바닥이자 관계맺음의 시작점으로서, 그녀는 자신의 부엌을 필요로 하는 두 남자를 거부하지 못한다.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쪽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기에. 그러나 결과적으로 관계란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깊어지는 것. 채식주의 남자에게 상처를 받고 육식주의 남자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과정은 말하자면 성인식의 통과제의인 것이다.
1964년 서울 출생. 1994년 장편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로 현대문학 주관 장편공모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하고, 1997년 작품집 「빈집」(도서출판 강) 출간하였다. 90년대 말 그는 2년간 혼자서 외국에서 살았다. 그리고 타인들과 외로움과 더위 속에서 얻은, 인간의 관계와 삶에 관한 사유의 고리를 소설로 엮어냈다. 작가로서 여성의 분냄새를 풍기지 않는 문체, 낯설지 않은 이국적 분위기와 특유의 환상, 건조한 듯 명징한 이미지로써 3편의 연작은 탄탄한 장편을 일구고 있다.
부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음식이다
땅 위의 영광
작가의 말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