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다
'이게 뭐야? 왜 이 딴 걸 갖고 다니지?'
나는 말없이 팔을 뻗어 종이조각을 뺏는다. 누운 채로 그것을 펼쳐 본다. 신문에서 오려둔 기사. 잉크냄새는 날아가고 누렇게 바랬지만 그래도 활자는 여전히 선명하다. 슈퍼마켓에 갔다가 실종된 가정주부 오인자씨(49세).
'혼자 두면 안돼. 혼자 두면 난 죽을지도 몰라. 제발 가지 마. 여기 있어.'
오인자는 부들부들 떨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머리를 각목에 부딪는다.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중근이 망설인다. 현수가 잡아끈다.
'겁먹을 거 없어. 돈이 오는 즉시 보내줄 태니까. 조용히 기다리기나 하라구.'
오인자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여자아이는 미소를 흘리며 입에 테이프를 붙여버린다. 테이프 몇 미터로 해결되다니, 얼마나 간편한가. 여자아이는 오인자를 질질 끌어 블록으로 만든 간이창고 같은 곳으로 끌고 들어간다.
수요일 일찍, 빼앗은 카드로 비키니를 미리 사두었다. 키가 커 보이는 디자인으로 빨강 색이다. 로베르타 이니셜이 무늬로 박혀 있다. 최고급 브랜드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도록. 돈이 들어오면 그때는 한번도 못 가본 겔러리아 명품관으로 진출해야지. 거기서 로베르타 수준의 고급 옷을 몇 벌 더 사야겠다. 비치 드레스랑, 어깨 없는 파티 복이랑, 영화에서 본 옷들을……
1958년 부산 출생. 충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에서 중학교 교사를 지냈다. 1986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저 석양빛』이 당선된 후 폭넓은 주제의식과 사회의식으로 다양한 관심사를 다룬 작품들을 속속 발표하였다.
소설집 『지붕과 하늘』(1989), 『개들의 시절』(1991) 『사십세』(창작과비평사 1996) 『플라스틱 섹스』(창작과비평사 1998)과 장편소설 『바다로부터의 긴 이별』(1991), 『소설 갑신정변』(『저 석양빛』 개제, 1991), 『산 위에서 겨울을 나다』(1992), 『사랑에 대한 열두 개의 물음』(1993), 『음모와 사랑』(1994)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