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기원
마냥 피하기만 하면 어떡해요, 그런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면서. 숟가락을 거실 바 닥으로 집어던지면서 엄마에게 악을 썼다. 그래도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 역시 아 래층 전화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아래층에 걸려오는 전화들은 대개 빚독촉인 전화가 대부 분이었다. 정수는 하루종일 학교 과사무실에 근무하고 있었고 정후는 카나다에 있다. 오래 전부터 아버지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드물었다. 이월에 옥탑방에 따로 전화선을 설치하였다. 나는 아래층 전화가 울릴 때마다 귀를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돈을 꾸어다 엄마에 게 건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 땅에서 몰락한 집 맏딸로 살기란 얼마나 구차하고 고통 스러운가. 잠결에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통은 마치 거울을 들여다볼 때처럼 내가 서 있 는 위치와 내가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아침에 눈뜰 때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두려웠다. 독촉 고지서가 날아들고 연체 이 자를 갚으라는 전화가 하루에도 두세 통씩 걸려왔다. 엄마가 우편물을 받아들고 엔설링이 돌아가는 전화기 옆에 붙어앉아 있었다. 엄마 손자 아래층에서 집을 지키고 앉아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또 회피했다. 아버지는 해종일 나가 있다가 저녁식사 때 돌아왔다. 나는 옥 탑방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엄마는 점점 더 살이 쪘고 페루의 바다사자처럼 비대해져 갔 다. 식사때 엄마가 지나가듯 말했었다. 아침이 오는 게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해가 들이비친다.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데…… 정원아, 너도 그럴 때가 있니? 나는 엄 마가 무서웠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엄마가 두려웠다. 그리고 또 두려웠다. 엄 마의 계산된 죽음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전, 귀를 세우고 소리들을 모았다. 엄마가 거실 테이블 위를 치우는 소리, 화장실 가는 발짝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 신문넘기는 소 리……그 모든 소리들이 들려오지 않을까봐 나는 아래층 쪽으로 귀를 집중시키곤 하였다. 안방에서 목을 맨 엄마, 욕실에서 동맥을 긋고 쓰러져 있는 엄마, 약을 먹고 널브러져 있는 엄마, 죽음 엄마, 자살해 버린 엄마, 피칠갑을 한 엄마, 그런 식으로 엄마는 생의 끈덕진 추행에서 벗어날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